명상 / 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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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길영태
Homepage   http://ytkil.com
Subject   한암 대종사 오도송
                     却下靑天頭上巒 : 다리 아래는 하늘이 있고 머리 위에는 산(땅)이 있네

                     本無內外亦中間 : 본래 내외가 없고 역시 그 중간도 없다네

                     跛者能行盲者見 : 절름발이가 걷고 소경이 본다

                     北山無言對南山 : 북산은 말없이 남산을 대하고 있다.

  한암 대종사님의 깨달음 당시의 시입니다.

  깨달음의 의식의 회복으로 현상을 가능하게 한 본질을 증득한 순간의 시라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이러한 본질의 특징은 위의 첫 번째와 두 번째 그리고 세 번째 련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 번째의 위아래가 없다 입니다.

  이는 본질의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당연한 표현이고 그렇다고 현상을 부정하지 않았으니 이로써 하늘과 땅 머리와 다리를 거론하고 있습니다.

  물리학에서도 우주는 물론이고 이를 가능하게 한, 즉 태초 이전의 경우에도 따로 위 아래가 없습니다.

  두 번째련의 경우도 동일한 표현입니다. 이는 현상을 가능하게 한 본질의 경우에는 공간이라는 개념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공간이 없으면 현상이 없고 시간도 없습니다.

  즉 현상이 있음으로 공간과 시간이 있다고 할 것 입니다.

  세 번째련은 격외의 도리를 말하는 것으로 돌사자가 하늘을 날고, 등의 표현이 있습니다.

  본질을 증득 하였다면 어떠한 표현도 틀린 것이 없고, 이로써 특별히 맞았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현상 또는 현상에 가까울 수록 그 현상의 변화, 유지, 운행을 위한 원리나 이치 또는 원칙등이 존재하게 되고 의식이 본질에 가까울 수록 그러한 분별이 사라지게 됩니다.

  격외는 거의 본질에 가까울 수록 현상의 특징이 사라짐으로 나타나는 의식의 형태(작용!?)이라 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시의 백미는 바로 마지막 련입니다.

  오직 깨달은 이만이 이러한 시를 쓸 수 있습니다.

  북산이 말 없이 남산을 대하고 있음을 어떻게 아는가?

  본인이 바로 북산이며 동시에 남산이고 또한 따로 북산도 남산도 아니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한암 종사는 반드시 북산과 남산이 서로 말 없이 대하고 있음을 현재진행형으로 체험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우주만물과 둘이 아니라는 비 이원성의 표현으로써 그 극치라 할 것입니다.

  이 느낌은 현상과 더블어 그 현상을 가능하게 한 본질의 상태를 증득한 각자만이 알 수(현재진행형의 체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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