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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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길영태
Homepage   http://ytkil.com
Subject   구지선사의 일화
  가끔 집에서 혼자있으면서 불교방송을 봅니다.

  주로 여러 선사님들의 법문을 듣습니다.

  그중에 푸른눈의 납자이신 "현각"스님의 법문을 가끔 듣는 편입니다.

  어젠가 스님이 "구지선사"와 시자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에 그 결말을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궁금으로 끝까지(사실 제대로 끝까지 듣는 편이 못됩니다) 들었습니다.

  내용은 모든 분들이 다 잘 아실 것입니다만, 글의 구성을 위하여 일단 줄거리는 간략하게 리바이벌 하겠습니다.

  구지선사님의 손가락이 전체 아홉이라 그 법명이 그렇다는 분들이 있는데 이것에 대하여는 그 분을 직접 못 보았으니 뭐라 말 할 입장은 못됩니다.

  그 분을 찿아오는 학인들이 "부처가 무엇입니까?" "어떤 것이 불법입니까?" 라고 물어보면 그 묻는 당사자가 얼마나 열심히 수행하는 구도자인가? 하는 점과 때가 되었는가? 등의 여러 가지 면에서 합당하다고 느껴지면 구지 선사는 아무 말 없이 느닷없이 검지를 상대의 눈앞에 치켜세운다고 합니다.

  그 한 동작에 상대는 잘 익은 밤이 "툭"하고 터지듯이 깨닫게 된다고 합니다.

  따라서 구지선사는 어떠한 경우에도 말로 또는 다른 행위로 학인을 인도하는 예는 없고 오직 검지만 치켜세우는데 선사의 "시자"눈에는 특히 그 행위가 너무 쉬어 보였습니다.

  하루는 선사가 절을 떠났는데 그 사이에 어느 학인이 구지선사을 찿아 왔습니다.

  그 학인이 시자에게 선사을 찿자, 시자는 선사께서 방금 출타하였고, 무엇 때문에 선사를 찿는가 하고 물었습니다.

  학인이 "불법"에 대하여 궁금한 것이 있어서 가르침을 받으러 왔다고 하자 시자는 구지선사의 그 쉬어보이는 가르침이 기억이 나서 "제가 선사을 대신하여 그 가르침을 전달할 수 있습니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학인이 이에 평생 수행하여오면서 그 궁금한 무엇을 묻자 시자는 구지선사처럼 검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러자 그 학인은 바로 깨달았습니다.

  마침 이 때 선사는 뭔가 절에 놓고온 물건이 있어서 가다말고 되 돌아왔는데 절에 막 나오는 학인을 보았습니다.

  그 학인의 얼굴을 보고는 바로 위와 같은 일이 있음을 직감하였습니다.

  시자에게 "뭔일이 있느냐?" 하고 묻자 시자는 스스로가 바로 선사와 같이 정각에 달한 양 의기양양해 하며 위의 사실을 선사에게 말하면서 "아! 제가 이러저러해서 이렇게 검지를 치켜세웠지요" 라고 말하면서 검지를 선사가 앞에서 치켜세웠습니다.

  이 때 선사는 느닷없이 소지하고 있던 칼로 시자의 손가락을 잘랐습니다,(아! 이에 대하여 그저 가볍게 칼로 베인 정도다 등의 여러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만, 제 생각에는 거의 잘라지는 정도로 여길 만큼 심하게 다쳤다고 여겨집니다. 그래야 효과가 있습니다0

  이에 시자는 경악을 해서 울부짖으면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자 뒤에서 선사가 큰 목소리고 급하게 "시자야!" 하고 소리쳤습니다.  

  시자는 아프고 겁나고 급한 가운데에서도 조건 반사적으로(평소 부르면 돌아보는) 도망치면서 뒤돌아 보자 선사는 시자앞에 느닷없이 검지를 치켜세웠습니다.

  그 순간 시자는 깨달음이 이루어졌습니다.( 깨달음이 이루어졌다는 표현이 좀 거시기 합니다.)

  사실 제가 가장 궁금한 것은 시자의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 시자의 의식에는 어떠한 상태였고, 그 상태에 선사의 그것이 어떠한 작용을 하여 시자의 의식이 한순간 어떻게 되었는가 하는 점을 "현각"스님이 한마디 할 것을 기대 하였는데 전혀 그 점에 대하여는 한 마디도 없었습니다.

  사실 이러한 점에 대하여는 그 누구도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첫 번째가 그것을 설명할 각자가 그리 많지 않다는 점과,

  두 번째로는 그러한 점을 세밀하게 설명하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어렵다는 점,

  세 번째로는 그것을 밝혔을 때 좋은 점으로는 깨달음이란 어떠한 형태 또는 상황인가를 어느정도 짐작하게 하여 초 견성을 유도하기 쉽다는 점은 있으나 잘못하면 오히려 관념만 만들어서 깨달음을 방해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시자는 선사가 항상 자상하게 대하여 주기에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따랐다고 보여집니다.

  또한 이를 바탕으로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하여 절대로 눈꼽 만큼도 잘못했다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스스로가 한 짓이 절대로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스스로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하여 대견스럽고 자랑하는 마음으로 선사에게 자랑삼아 "저도 참 잘했지요!" 하는 마음으로 그 행위를 재현하였습니다.

  즉 시자의 의식은 극단적으로 상대를 믿는 마음(의식의 상태) (아버지에 대한 공부 잘하는 어린 아들의 자랑하는 마음)

  즉 그러한 의식의 상태를 일거에 무너트리는 그야말로 정반대의 행위를 느닷없이 선사가 시자에 베품니다.

  이 일련의 행위를 유형력으로 비교하면 시자가 그 때 까지 칫닫고 있는 의식의 방향과 그 반대 의식으로 돌려놓는 그 행위는 비유컨대 시자의 몸이 둘로 갈라지는 충격이라 할 것입니다.(한 쪽으로 칫닫는 의식을 그 반대로 갑자기 당겨버리는 행위의 충격으로 인하여)

  선사에 대한 사랑과 자랑 그리고 믿음이라는 모든 것이 한순간 무너지는 경악과 손가락이 잘린 듯한 경악이 한데 어우러진 그 순간 선사는 그 시자 불러 세우면서 그 시자 얼굴 앞에 검지를 치켜 세웁니다.

  시자가 이 검지를 보는 충격은 또 다른 것입니다.

  그 행위는 선사가 학인을 가르치기 위한 행위로써 도데체 지금 시자에게 그것이 어울리는 행위인가에 대하여 시자는 전혀 어떠한 마음을 스스로 만들 수 없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시자의 의식은 또 다시 두 번 째로 그 반대 방향으로 잡아끄는 무지막지한 충격으로 어떠한 방향으로든 어떠한 상황으로든 어떠한 작용으로든 전혀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즉 그 순간 시자의 마음은 폭발(자폭)하여 없어졌습니다.

  시자는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얗게 타 버렸습니다.

  말로는 도저히 설명할 수 없는, 어떠한 마음이든 도저히 형성될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 구지선사에 의하여 시자에게 일어났습니다.

  만약 시자가 평소에 수행을 많이 하는 학인 이라면 이처럼 극적인 충격까지는 필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선사를 아버지처럼 따르는 철없는 시자를 깨달음으로 인도하고 싶어하는 선사의 마음이 평소 어떠하였는지 잘 알 수 있었습니다.

  아마 선사는 항상 그 친 아들 같은 시자에게 깨달음의 순간을 주려고 무척 노심초사 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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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20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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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2006/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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