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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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길영태
Homepage   http://ytkil.com
Subject   3.2 절대와 상대를 동시에 가능하게 하는 일념
  선사들은 그의 가르침에서 색과 공은 다르지 않고, 있음과 없음도 그 차이가 없다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정확히는 유는 무이며, 무는 유이며, 유는 유이면서 무이고, 무는 무이면서 유이고, 유도 아니요, 무도 아니며 그 아닌 것도 아니며,  따라서 그 무엇도 아니며, 그 아닌 것도 아니다.

  라고 말장난 같은 말로 어지럽게 표현합니다.

  이것은 상대와 절대 즉 현상과 본질에 대한 그 속성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유와 무라는 관념 외에 현상과 본질 등 여러 가지 관념을 적당히 대입하여도 당연히 그렇게 표현됩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한 이유는 깨달음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보통사람들은 현상과 본질이 단절되어있다고 할 것입니다.

  (정확히는 스스로가 단절되지 않고 있음을 본인이 체험치 못하여 모른다고 할 것입니다)

  이처럼 본질과 현상의 경계를 없애는 것이 가능한, 즉 "양다리"(표현이 좀 거시기 합니다만, 본질과 현상이 하나로 되었다 라든지 또는 둘이 아니다 라든지 여러 가지 표현을 하여도 동일합니다)걸치는 것이 가능하게 하는 수행의 요체는 다음과 같습니다.

  1. 일반적인 좌선에서는 무조건 "졸지 않는다" 또는 "수마를 물리친다" 라는 요결을 습득하는 것입니다.

  (주로 수행자들이 행하는 관이나 집중이 그러한 능력을 길러준다고 할 것입니다)

  이것은 좌선으로 온몸이 이완되어 육신은 물론 뇌도 대부분 잠이 들어 버리는데 결코 잠들지 않는 어떤 "일념"(이 표현도 시빗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이것도 수행인들 사이에서는 여러 가지로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로써 유명한 것으로는 마음이 부처이다 라고 할 때 이 마음은 일반적인 마음이 아니라 바로 본래면목을 말하는 것인데, 이것 역시 시빗거리가 있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는 위에서 말한 절대와 상대의 논에 의하여 중생심이 바로 부처심이라 하더라도 이를 틀렸다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잠들지 않음은 바로 "항상 깨어있음"을 가능하게 하는 기틀이 됩니다.

  잠이든 상태에서도 그 의식이 살아있는 기틀이 된다는 것은 본질 속에서도 깨어있을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2. 항상 깨어있는 그 의식은 현상계의 의식인가 아니면 본질의 고유한 특성인가?

  그것은 원래 현상계에서의 모든 의식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의식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의식으로 스스로의 본질을 체득하게 되면(깨닫게 되면) 처음에는 그러한 이유로 그 의식이 현상계의 의식이라 여겨져서 "현상계의 의식의 근본이 되는 것이 본질에 뿌리를 내렸다" 라고 표현하는데 이것은 수행인의 체험에 의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수행이 깊어지면 그 의식은 현상계의 의식이면서도 본래면목의 한 특성이며, 그 의식은 직접적으로 본래면목(순수의식)에서 바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됩니다.

  3. 화두선에서의 의정도 결국은 이러한 "일념"의 작용을 한다고 할 것입니다.

  즉 생각을 끊고도 잠에 들지 않고 항상 깨어있을 수 있는 그 기틀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의정이 형성되면 이로써 화두는 그 역할을 다하였다고 할 것입니다.

  4. 라마나 마하리쉬님의 "나는 무엇인가"의 수행도 "나라는 느낌"을 붙들고 늘어지는 것인데 그 느낌이 바로 생각을 끊고 항상 깨어있도록 하는 역할을 함으로 역시 같은 원리일 것입니다.

  어떻든 이러한 의식이 현상계에서는 물론 본래면목에서 깨어있게 되면 다음과 같은 효과를 갖고옵니다.

  1)우선 좌선등 수행중에는 위에서 말한 그 의식이 현상계에는 거의 없고 본래면목으로 대부분 들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2) 일상중에서는 필요한 만큼은 현상계에 나머지는 본래면목에 들어가 있어서 "필요한 만큼" 마음을 내고 있다고 할 것입니다.

  (위의 두가지 표현은 그야말로 절대로 잘못된 표현입니다. 다만 제대로 표현하자면 말이 너무 길어져서 간단하게 표현하고자 한 것이니 양해 바랍니다. 절대로 의식이 본래면목에 들어가고 어쩌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막 깨달은 수행자는 처음에는 정말 그 깨어있는 의식이 본래면목으로 들어가는 듯함을 느끼게 됩니다.)

  이러한 균형은 필요에 따라서 중도는 물론 한쪽으로 치우치기도 합니다.

  이로 인하여 수행자는 생노병사 중에서도 태어난 적도 없으며 따라서 죽지도 않음을 증득하고 있고,

  성주괴공 속에서 불변함을 증득하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속에서도 무시간을,

  공간속에서 무공간 등을 현재진행형으로 체험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이 가능함으로 위에서 말한 상대와 절대에 관한 희한한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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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200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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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2007/0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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