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 / 선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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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길영태
Homepage   http://ytkil.com
Subject   3.4 바로 이 때에
此時應不識 : 이때(바로 지금) 알지 못하니

今日正無生 : 지금 바로 이순간이(여기가) 태어남이 없음이라

欲識無爲道 : 무위도를 알고자 한다면

紛紛世上情 : 어지러운 세상 속에서 살아가거라

  위의 시는 영월당대사문집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시는 깨달음이후에 다시 완전해지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 련은 깨달음은 특별한 순간의 특별한 상태가 아니라 보고 듣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의 순간순간 들 속에서 항상하는 깨달음의 의식을 말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사실 순간 이라고 하나 이는 간단없이 계속되는 깨달음의 의식 상태(본래면목)라 할 것입니다.

  두 번째 련의 경우도 같은 맥락을 말하는 것으로 깨달음의 의식의 속성이기도 합니다.

  각자는 자신의 순수의식이 결코 태어난 적이 없이 태초이전부터 항상 하였음을 항상 자각하는 상태라 할 것입니다.

  이 두 련은 별것이 없습니다.

다만 세 번째 련과 다시 이어지는 네 번째 련에서 이 선시를 쓴 분이 주장하는 바가 있습니다.

  세 번째 련의 “무위도”란 행위중의 무위를 말하는 것으로 아무것도 아니하는 즉 아무 의식도 없는 바위와 같은 무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러한 무위의 특성은 어떠한 행위라도 결코 그 찌꺼기가 남지 않음을 말합니다.

  이는 아무리 많은 세속의 행위를 해도 스스로 자신의 본래면목은 전혀 움직임이 없음을 스스로 자각하는 것이라 할 것입니다.

  따라서 진실한 무위라면 많은 그리고 어지러운 행위속에서 그 빛을 발한다 할 것입니다.

  이 무위는 선사가 임종시에 “나는 한마디도 한말이 없다”라고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하며, 팔만대장경의 내용도 “공”이다 라고 하는 것과 맥락을 같이 한다 할 것입니다.

  다만 행위중의 무위와 무위중의 행위는 겉에서 보기에는 약간의 차이만 또는 없는듯하나 그렇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무위중의 행위를 알고 싶은 분은 나름데로 그 수행을 해보실 것을 권합니다.

  *추록 : 진실로 세속이 아닌 곳이 없습니다.
수행자가 세속을 등지고 산속에 홀로 들어가 토굴수행을 한다고 해도 그는 결국 행위중에 무위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다만 세속의 경우와는 현저하게 다른 것이 그 행위들이 세속의 것처럼 다양하고 어지러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만큼 자극이 적고 행위가 행위 같지 않으니 무위를 자각함이 그 만큼 쉽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완전하게 깨달은 사람이라면 아마 세속에서 더욱 자신을 잃지 않고 그 무위를 즐기리라 여깁니다.

  따라서 수행자는 세속에서 싹을 피우기 어려우나 일단 뿌리가 튼튼해지면 산속 토굴보다는 더욱 완전하게 수행의 성과를 이루리라 여깁니다.

  추록2 : 본질과 현상의 관계가 그러하듯이 역시 무위와 유위의 관계도 체험의 세계이며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결국은 유위가 바로 무위임을 증득하여 그것이 항상하는 상태가 깨달음이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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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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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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