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사람의 수행 / 명상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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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길영태
Homepage   http://ytkil.com
Subject   불도와 선도, 선과 선수행의 방편들 , 그 유래+
제 자신이 불도의 선수행을 하는 수행인으로써 불도의 선, 선수행, 그리고 선도와는 무엇이 다른가에 대하여 썼습니다.

아래 내용은 경전의 자자 구구에 대하여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경전을 본지 오래 되어서 그런 것이나 전체적인 흐름의 문맥은 맞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선에대한 가르침은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현대인처럼 부정적 성향이 많지 않아서 선의 필요가 적습니다.

그러나 능엄경에는 선의 가르침이 있습니다.

우선 인간의 고통과 번뇌는 집착에서 비롯되는데

그 집착은 거짓 나, 즉 마음에서 비롯되고,

마음은 망상(생각)에서 비롯됩니다.

이러한 집착을 끊으려고 무척 애를 써도 힘든 것은 사실입니다.

이유는 집착은 결국 망상 즉 생각에서 비롯되는것이며 이를 끊으려고 하는 마음도 생각에서 비롯되고 끊으려고 하는 노력도 일종의 집착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일단은 생각을 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서 생각을 하지 않도록 즉 무념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편들이 만들어 졌습니다.

무엇이 무념인가 무엇이 집착을 끊었을 때의 상태인가, 무엇이 마음이 소멸 즉 거짓나가 소멸된 상태인가 하는 것은 각자 수행을 해서 증득할 문제입니다.

어떻든 모든 수행은 일단 난마처럼 날뛰는 그 망상을 잡아 묶어 쉬도록 하는 것이 첫번째 관문입니다.

1. 탄트라 112가지 방편

고대 인도에서부터 유래된 112가지 방편들은 상당히 널리 알려진 것입니다.

우선 1번부터 8번은 주로 호흡과 관련된 방편으로 호흡을 관하는 것들입니다.

이 호흡에 관한 방편들은 불교에서 갖고 가서 부처님 당시의 수행법인 사념처(위빠싸나)가 되었고 그후에 달마조사이래 선수행의 방편으로 이용되었습니다.

이 결과 정작 인도에서는 호흡을 이용한 방편이 별로 없습니다.

이유는 불교에서 이를 사용함으로써 이 방편의 수행은 곧 불자라는 인식 때문에 힌두교 쪽에서 반발등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화두는 좀더 근래에 들어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23번인가 26번인가에는 그 유명한 "사랑 헌신 그리고 대자유"이라는 글이 있습니다.

이 한줄의 시가 모든 헌신의 방편으로 하는 종교의 원조가 되었습니다.

기독교의 헌신과 신에 대한 사랑이 그 대표적인 것입니다.

이 탄트라의 내용을 보면 시각. 청각, 촉각, 춤등 그야말로 다양한 수행방편들이 있습니다.

제 3의눈 수행도 이중에 하나 입니다.

그 외에 이를 바탕으로 변형되거나 응용된 방편까지 합하면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2. 불교경전상의 선 수행 방편들

위빠싸나(사념처)수행을 들수 있습니다.

우선 사념처중의 하나인 호흡을 이용한 것으로 숨을 쉬는데 따라서 들어오고 나갈때 배가 나오고 들어가는 것을 관하는 것으로 지금의 좌선에서도 이를 응용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는 걸어가면서 몸을 관하는 것으로 불가의 선수행에서 좌선하고 나서 졸음등을 없에기위하여 걸어다닌 경행수행이 있는데 사념처와 동일하다고 보여집니다.

다음으로는 능엄경에 기록된 것으로 수행의 방편으로 시각, 청각, 촉각등을 이용하여 집착(망상)을 끊은 것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것은 탄트라 112가지 방편과 너무 흡사하다는 것입니다.

능엄경에서 부처님 사후에 깨달음을 얻은 부처님의 사촌동생에게 부처님이 안타까워서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객체와 이를 보는 주체는 전도된 망상에서 비롯된 것으로 허망하고 헛것인데 너는 어째서 이 허망한 것에만 집착하고 객체를 보는 주체를 가능하게 하는 변함없는 본래성품은 모르느냐?"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당시에도 좀 생각이 많고 부정적인 사람들은 간단히 말 한마디에 그렇게 쉽게 자신의 집착을 끊고 자신의 성품을 볼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달마대사를 첫번째 조사로 해서 여러방편들을 만들어서 이 성품을 보는 견성이 가능하도록 하였습니다.

3. 선의 종류

부처님 당시의 선의 시초로는 "염화시중"의 고사를 들어 이를 선의 시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만, 반드시 그렇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달마대사 이후 여러 선 불교가 만들어 졌습니다.

물론 선불교는 부처님 당시부터 유래된 것이나 그것이 교에서 떨어져나가서 일맥을 유지하게 된 것이 바로 달마대사 이후로 알고 있습니다.

1)묵조선

이 선수행은 화두가 없습니다.

묵조선의  다음의 간단한 요결이 있습니다.

첫째가 조용히 앉을 것

둘째가 어떠한 경우에도 생각을 하지 말것

새째가 어떠한 경우에도 졸지말 것

이 세가지중 아래 두가지는 그야말로 엄청난 수행의 방편으로 무지막지한 요구입니다.

만약 이것이 가능하다면 수행인은 누가 가르쳐 주기 않아도 생각을 끊는 방편을 저절로 습득하였다는 것이고 아마 누구라도 호흡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두번째의 졸지 않게 되었다면 뇌를 포함한 육체가 잠이 들어도 잠을 자지 않는 의식이 형성되니 뇌는 물론이고 육체도 잠이들어도 들지 않은 신경체계의 변화가 있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일본의 묵조선인 조동종에서는 화두선을 비판하여 그렇게 어렵게 성품을 회복할 것이 무엇인가,

고요히 앉아 바로 성품에 들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반문 합니다.

그러나 부처님 당시에도 힘들던 성품을 보는 것이 현대에 이르러 그렇게 쉽게 될수 은 없습니다.

다만 어떤 방편이든지 성품을 본 사람이 조용히 앉아서 자신이 회복한 본래성품상태에서 있게 되면 그것이 진정한 선정이며 수행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선 수행은 결국 묵조선의 최후 상태와 같아진다고 할 것입니다.

2))화두선

화두선은 선사가 주어지는 화두를 받아서 화두를 들고 있는 수행을 하게 됩니다.

예로 들면 화두로 유명한 조주의 무가 있습니다.

당시 선사들은 "세상의 모든 만물은 불성이 있다"라고 가르쳤습니다.

어떤 수행승이 조주 스님에게"개에게 불성이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예상 되는 대답은 있다. 였습니다.

그러나 조주스님은 그 예상을 뒤엎고 "없다" 하였으며 이로써 그 유명한 "무" 자 화두가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왜 지금까지는 개에게도 불성이 있다 라고 배웟는데 조주스님은 없다고 하는가?" 하는 의심을 갖게 됩니다.

문제는 화두를 두는 방법인데

화두는 과학적으로 왜 개에게는 불성이 없는 가 하고 그 답을 구하는 것이 아니고 그저 일념으로 의심하는 마음만 유지하는 것입니다.

이 의심하는 의식을 "의정"이라고 합니다.

이 의정은 생각이 아니라 의심하는 의식의 상태로 생각이 없는 의식의 상태입니다.

제가 경험하기로는 아마 라마나 마하리쉬님의 존재의식과 동일하거나 아니더라도 그 역활은 동일하도 봅니다

즉 의심하는 의식을 자나깨나 잃지 않고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로써 그 의정의 상태가 오매일여가 되어 생각이 완전히 끊기면 의정 조차 사라지고 마음의 작용이 완전히 사라지게 되어 견성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 방편은 무지막지 해서 부정적 성향이 많은 현대인에게 알맞은 수행의 방편이라할 것이고,

너무 무지막지해서 제대로 화두를 들고 깨치면 그후의 습을 없에는 보임도 거의 필요 없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만 깨우친 선사가 그 수행자의 특성에 맞게 화두를 선정해 주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3))기타 선 수행자들이 사용하는 방편들

112가지 탄트라 수행과 이를 응용한 모든 수행을 전부다 응용한다고 보면 됩니다.

심지어는 선도의 호흡까지도 이용합니다.

일단 불가의 공을 증득하는 초 견성이후에 제대로 된 선 수행을 하게 됩니다.

화두를 들지 않는다면 대부분 묵조선쪽으로 흐른다고 보여지고 화두로써 견성하였다면 화두를 버리고 선정에 든다면 역시 묵조선의 최후 형태와 동일하거나 유사하다고 할 것입니다.

4))선도와 불도의 차이

화두를 들때 화두를 단전으로 들어야 한다고 합니다.

이는 상기를 막기 위한 것으로 은연중에 호흡을 이용하여 화두를 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즉 집중에는 기가 발생하고 그 기를 이용하여 화두를 들게 됩니다.

묵조선의 경우 졸지 않으려면 절대로 소주천이 되어야 합니다.

즉 등뒤로 타고 올라온 한줄기 기의흐름에 의하여 신기가 형성되어 졸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무소유"들을 쓰신 법정스님이 하신 말씀중에서 "수행인은 허리아래로 부터 소식이 있으면 곧 도를 이루게 된다" 라는 말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불가의최대 기공능력자는 "성철"스님으로 선도든 불도든 상기된 수행자에게 많은 도움을 주신 것으로 합니다.

원불교의 선수행(좌선)은 단전에 의식을 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선 수행과 선도의차이는 지향하는 바를 달리합니다.

불도는 우선 집착을 끊고 고통과 번뇌에서 벗어나서 부처가 되는 것이며 이는 거짓 자아의 소멸로써 이루어 집니다.

선도는 한마디로 "신선"이 되는 것으로 이는 축기 나 기의 운용, 양신등과 관련됩니다.

불도에서는 기는 깨달음을 위한 작은 하나의 수단으로 상기등 탈만 나지 않을 정도로 생각하고 모이든 말든, 흐르든 말든 그냥 나두어 버립니다.

만약 기에 마음을 지나체게 두게 되면 그 순간 부터는 불도가 아닌 선도가 됩니다.

불도는 신선은 물론 부처가 되겠다는 집착 까지 없어야 이루어 지는 수행이기 때문입니다.

즉 부처는 부처가 되겠다는 생각조차 없어야 이루어 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오직 집착을 끊고 무명에서 벗어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선도와 불도는 그 길이 근본적으로 다르기에 선도적 차원에서 불도를 짐작하는 것은 전혀 가능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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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2005/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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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영태
  2005/0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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