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골사람의 수행 / 명상 이야기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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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길영태
Homepage   http://ytkil.com
Subject   수면의 차원에서본 수행

  좌선의 형태를 갖고 있는 수행의 경우에는 무조건 졸지 말아야 합니다.

  수행은 어느정도 세월이 지나다 보면 졸지 않게 됩니다.

  그래도 무척 피곤하면 가끔 졸게 되는데, 수행이 완전해지면 아무리 피곤해도 깜박 깜박 조는 일 조차 없어집니다.

  전에 이와 관련 하여 글을 썼듯이, 좌선을 하게 되면 육체는 이완된 상태이고 마음은 가라앉고 잡 생각(사념등)이 사라지므로 잠을 잘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되나 이를 거부하는 것이므로 육체의 신경체계가 이에 적응하기 위하여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변화는 대게 단전이 하나로 통하게 되고 차크라가 깨어나고, 특히 백회나 제3의눈 즉 상단전이 활성화 됩니다.

  어떻든 이는 평상의 수행일 경우입니다.

  사람은 상당한 시간을 매일 잠으로 보냅니다.

  따라서 이번에는 수행 중 잠이 들지 않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잠을 자면서 의식이 깨어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수면 중 의식이 깨어있으면 자신이 오른쪽으로 자는지 왼쪽으로 자는 등을 알게 됩니다. 또한 대부분의 잠이 참으로 달콤하게 느껴집니다.

  수행이 어느정도 되면 이처럼 수면 중 깨어있는 것은 어렵지 않게 됩니다.

  다만 수면 중 꾸어지는 꿈은 정말 어려운 점이 많습니다.

  꿈은 주로 수행인이 일상의 생활중에 마음에 걸린 편린 같은 작은 조각의 스트레스가 그 원천입니다.

  더욱이 꿈이라는 특성은 스스로 수행인의 의지가 거의 작용하지 못하는 영역입니다.

  수행인 이라도 에고를 완전히 없엘 수는 없는 것입니다.

  에고의 작용이 있어야 육체도 그 생명을 이어가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세속의 세파는 수행인이 깨어 있어도 그 마음을 흔듭니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룬 수행인 이라면 일어나고 사라짐이 비어있는 이 곳의 걸림이 없음으로 인하여 그 작은 편린도 걸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완전히 깨달음을 이룬 사람일 지라도 세속의 생활은 때로는 그 마음의 작용을 그저 보듬어 않고 살아가기에 그 편린이 남습니다.

  이것이 재료가 되어 꿈을 꾸게 됩니다.

  수행인 으로써 가장 좋지 않은 꿈의 형태는 꿈에 휩쓸려서 감정의 변화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두려움, 미움, 등입니다.

  다음은 그저 맑게 깨어 있음으로 아무런 감정의 영향이 없이 스스로 이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에는 종종 스스로 꿈의 내용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면서 이끌어 가기도 합니다.

  티벳의 명상 중에는 이러한 특성을 살려 꿈을 이용한 수행도 있습니다만, 저로써는 그리 탐탁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다음으로는 수면 중에 깨어있는 의식이 강하여 떠오르는 사념이 꿈으로 되지 않고 그냥 사념의 형태를 띄고 이를 지켜보는 것입니다.

  이 경우 수면의 깊이가 얕아서 피로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이 깊으면 깊은 수면 중에서도 이처럼 사념을 지켜볼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그런데 좋다고 보여집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말한 걸림이 전혀 없는 수행인의 경우라면 수면은 그저 맑고 깨끗한 의식의 상태에서 시간의 흐름을 거의 초월하여 있게 됩니다.

  즉 그저 수분 지난 것 같은데 7시간정도 지난다는 등입니다.

  (걸림이 없는 것과 돌멩이와 같이 스스로 감정을 없엔 것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깨달은 수행인 이라도 여러 가지 조건에 따라서는 위에서 설명한 첫 번째 현상이 어쩌다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수행의 세월이 많이 흐르면 차츰 좋지 않는 형태의 꿈은 사라지게 됩니다.

  꿈속에서는 수행인의 의지가 별로 작용할 수 없다고는 하나 노력의 여하에 따라 어느정도 작용하기는 합니다.

  꿈은 기의 흐름과도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만약 수행인이 꿈을 꾸기 시작하는 즉시 스스로 그 꿈에서 벗어나서 자신의 육신을 살펴보면 소주천 경로를 타고 기가 흐름을 인지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그 기가 남자의 그 부분을 지나게 되면 여인과 관련된 상황(느낌 마음 또는 더 나아가서 구체적인 상황 등)의 꿈이나 사념을 갖게 됩니다.

  이에 대한 대응도 수행의 정도에 따라 다릅니다.

  여자라는 업에서 벗어났다고 하더라도 일상에서 그 편린이 남아있게 되면 역시 그렇습니다.

  또한 기가 그러한 곳을 지나더라도 그러한 꿈을 꾸지 않을 수 도 있는데 이는 그가 어느 정도의 세월동안 일상에서 여자에 대한 근본적인 어떤 편린도 남아있지 않을 경우로 여겨집니다.

  이러한 것만 문제로 본다면 아마 세속을 떠나서 산속에 있으면 유리 할 것입니다.

  세속의 자극은 완전히 아물지 않은 상처를 자꾸 건드리는 것 과 같습니다.

그  러나 이러한 아픔이 조금은 있어야 수행으로 깨달은 사람일 지라도 세상을 사는 즐거움이 있는 것이기는 합니다.

  끝으로 수행 중 와선에 대한 것을 기록하겠습니다.

  와선은 누워서 수행하는 것이고 그 유명한 붓다의 자세가 있습니다.

  이 와선은 누워있으므로 그 이완이 너무 강하여 수행의 어려움이 있습니다.

  더욱이 옆으로 누운 자세에서는 상중하 단전으로는 마음집중조차 어렵습니다.

  이런 사정으로 인하여 스스로 의식이 단전 등에 깃들지 못한 관계로 일반적인 수면으로 변하기 쉽습니다.

  또한 수면이라고 하더라도 기의 흐름이 강하게 나타나는 특성이 있어서 위에서 말한 꿈을 반드시 동반하게 되는 특성이 있습니다.

  이 또한 그날 그날 형편에 따라서 잘되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합니다.

  만약 수행인의 수행이 잘 되어서 상중하 단전의 통일과 그 기의 흐름이나 기의 모임이 강하게 되면 참으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입니다.

  이 것은 수면과 수행의 차이가 없어짐을 뜻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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